[글마당] 냉장고
속 다 비우고 기억도 비우고 짐차에 실리는데 여우비 한 줄금 메슥거림을 다스리기라도 하듯 쏟아진다. “너 온다기에 경로당 총무에게 부탁해서 사놨지” 제주도 두텁떡, 봉평 메밀전병, 상주 곶감… 고요가 짓무르던 엄마의 집은 은빛 냉장고만 비만을 해명하며 분주했었는데 엄마 떠나고 절로 싸늘해지던 날 꽁꽁 언 먹거리들은 버려지면서도 부재를 외면하려는 듯 녹을 줄 모르더니 문이 닫히고 열리는 순간의 방심으로 조금씩 식어가던 생 명이 다 된 걸 아는 일은 갈 길이 훤히 보이는 것인가 동요도 타박도 않고 멀어져간다. 조성자 / 시인·뉴저지글마당 냉장고 은빛 냉장고 제주도 두텁떡 메밀전병 상주